모더나 이슈로 살펴본 암의 종류 — 폐암·유방암·백혈병·대장암·전립선암·간암·췌장암, 표적과 치료제와 최신 전황 총정리 [특집]
모더나가 쏘아올린 mRNA 암백신 기대감으로 바이오 전체가 달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암 치료제 관련주"라는 말은 사실 너무 큰 바구니입니다. 암은 하나의 병이 아니라 생긴 장기와 고장 난 유전자가 제각각인 수백 개 병의 집합이고, 치료제도 표적도 기업도 암마다 다릅니다. 오늘은 주요 암을 하나씩 돌면서 — 무엇이 고장 나서 생기고, 어떤 약이 있고, 지금 전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 지도를 그립니다. 올해 들어 이 지도의 국경선이 유난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폐암 — 소세포 15%, 비소세포 85%, 그리고 EGFR 전쟁
폐암은 크게 소세포폐암(약 15%)과 비소세포폐암(약 85%)으로 나뉩니다. 주식시장에서 뉴스가 되는 건 대부분 비소세포폐암 쪽입니다.
비소세포폐암 환자 상당수는 암세포 표면에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이 지나치게 많이 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성장인자(EGF)가 결합하면 티로신 키나아제라는 효소가 활성화되면서 세포 증식이 폭주합니다. 표적치료제는 이 액셀 페달에 자물쇠를 채우는 약입니다.
3세대 EGFR 표적치료제의 세계 챔피언이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오시머티닙) — 연 매출 8조 원대의 초대형 블록버스터입니다. 여기에 도전한 것이 유한양행이 개발해 존슨앤드존슨(J&J)에 기술수출한 렉라자(레이저티닙)입니다. 국산 신약 최초로 미국 FDA에 입성한 데 이어, 올해 진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J&J의 이중항체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 렉라자를 묶은 병용요법이 3상(MARIPOSA)에서 타그리소보다 전체생존기간(OS)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늘렸다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챔피언과의 타이틀전에서 판정승 데이터를 받아든 셈이고, 이 병용요법의 올해 상반기 글로벌 매출은 이미 8천억 원대로 올라섰습니다. 유한양행은 지난 5월 유럽 상업화 마일스톤 3천만 달러를 받는 등 판매가 늘수록 로열티가 쌓이는 구조입니다.
다음 전선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3세대 약을 쓰다 보면 암세포가 C797S 변이라는 새 자물쇠 구멍을 만들어 내성을 갖게 되는데, 이 변이를 노리는 4세대 후보를 놓고 국내외 기업들이 경쟁 중입니다. 암과 제약사의 관계는 창과 방패의 무한 시리즈물입니다 — 시즌이 바뀔 때마다 주인공 기업도 바뀌고, 시즌 예고편(임상 데이터)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먼저 움직입니다.
유방암 — HER2, 그리고 ADC가 표준을 갈아치운 해
유방암의 상당수는 HER2(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2,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의 과발현이 원인입니다.
이 표적을 겨눈 원조 항체가 로슈의 허셉틴(트라스투주맙) — 지난 글에서 본 '주맙', 인간화 항체입니다. 그리고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엔허투(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가 판을 갈아엎었습니다. 엔허투는 ADC(항체-약물 접합체)입니다 — 표적을 찾아가는 항체에 강력한 독성 약물을 링커로 매달아 암세포 앞까지 배달하는 유도미사일이죠.
올해 이 유도미사일이 수도를 점령했습니다. 미국 FDA가 엔허투+퍼투주맙 병용을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의 1차 치료제로 승인 — 10년 넘게 굳건하던 1차 표준치료가 교체된, 유방암 분야의 정권 교체입니다. 조기 유방암 쪽으로도 적응증을 추가하며 쓰이는 단계가 계속 앞당겨지고 있고, HER2가 조금만 발현되는 'HER2 저발현' 환자까지 시장을 넓히는 중입니다. 좋은 무기는 전선을 가리지 않습니다.
ADC에서 기술의 핵심은 뜻밖에도 접착제, 즉 링커입니다. 너무 일찍 떨어지면 멀쩡한 세포에 폭탄이 터지고, 안 떨어지면 불발탄입니다. 이 링커 기술로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을 쌓아온 국내 대표주자가 리가켐바이오입니다 — 올해 초에도 일본 오노약품으로부터 플랫폼 마일스톤을 수령했고, 연내 신규 임상 진입 4~5건을 목표로 내건 상태입니다. ADC 시대의 국내 대장주 자리를 지키느냐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백혈병 — BCR-ABL과 글리벡, 그리고 암 밖으로 나가는 CAR-T
만성골수성백혈병은 BCR-ABL이라는 비정상 융합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티로신 키나아제가 원인입니다. 이 효소만 억제하면 암세포의 성장과 분열이 멈춥니다.
그걸 해낸 약이 노바티스의 글리벡(이매티닙) — 5년 생존율이 극적으로 뛰며 죽음의 병을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바꿔놓은, 표적항암제 시대의 개막작입니다. 급성 혈액암 쪽에는 지난 글에서 다룬 CAR-T 치료제가 있습니다. 노바티스의 킴리아가 원조 — 환자의 면역세포를 꺼내 개조해 다시 넣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맞춤 주사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올해 CAR-T의 가장 큰 뉴스는 정작 암 바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에서 CAR-T가 인상적인 데이터를 내며 적응증 확장이 본격화된 것 — 혈액암용으로 개발된 기술이 훨씬 큰 시장으로 걸어나가는 중입니다. 기술의 영토가 넓어지면 밸류에이션의 영토도 넓어집니다. CAR-T 위탁생산(CDMO)과 세포치료제 소재 기업들이 같이 묶여 움직이는 이유입니다.
대장암 — KRAS, 30년 난공불락 요새의 함락 개시
대장암은 소장 끝에서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기관(결장·직장)에 생기는 암으로, EGFR, KRAS, PI3KCA, APC 같은 유전자 변이가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EGFR을 겨눈 항체로는 얼비툭스(세툭시맙)가 있습니다 — 끝이 '시맙', 키메라 항체라는 것까지 지난 글의 규칙으로 읽힙니다. 진짜 드라마는 KRAS 쪽입니다. 대장암 환자의 약 40%가 KRAS 변이를 갖고 있는데, 이 표적은 30년 넘게 "약이 안 듣는 표적(undruggable)"의 대명사였습니다. 그 요새에 처음 깃발을 꽂은 게 암젠의 루마크라스(소토라십), 뒤이어 미라티 테라퓨틱스의 크라자티(아다그라십)는 BMS가 회사째 인수하며 가져갔습니다. 30년 묵은 자물쇠가 열리기 시작하자 열쇠공을 회사째 사들이는 동네가 된 겁니다. 그리고 이 KRAS 이야기의 최신 화는 아래 췌장암 편에서 이어집니다 — 올해 종양학 최대 뉴스가 거기서 터졌기 때문입니다.
전립선암 — PSMA와 방사성 리간드, 치료 순서가 앞당겨진다
전립선암 세포 표면에는 PSMA(전립선특이막항원)라는 단백질이 과발현됩니다. 노바티스의 플루빅토는 이 PSMA를 찾아가는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루테튬-177)를 실어 암세포에만 국소 방사선을 쏘는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입니다 — 방사선 치료를 기계가 아니라 주사로 하는 셈이죠.
처음엔 말기 환자용이던 이 약의 사용 시점이 계속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화학요법 전 단계 승인에 이어, 최근에는 더 이른 병기인 전이성 호르몬 감수성 전립선암(mHSPC)까지 FDA 승인을 확대했습니다. 쓰는 환자군이 앞 단계로 한 칸씩 올 때마다 시장은 배수로 커집니다.
이 방사성의약품 장르의 국내 대표 도전자가 퓨쳐켐입니다. PSMA 표적 치료제 FC705로 미국 임상 2a상 투여를 마쳤고 국내 3상에 들어갔습니다 — 글로벌 빅파마들이 방사성의약품 기업을 잇달아 인수해온 터라, 데이터가 좋으면 기술이전 시나리오가 따라붙는 자리입니다. 다만 임상 자금을 위한 증자 이력이 있다는 점은 지난 글의 체크리스트(런웨이와 자금조달)를 그대로 적용해서 볼 부분입니다.
간암 — 침묵의 장기, 면역항암제 시대의 본격화
간은 통증 신경이 둔해 '침묵의 장기'로 불립니다. 증상이 나올 때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고, 간세포암과 담관암으로 나뉩니다. 한국은 B형간염 보유자가 많아 간암이 유독 무거운 나라입니다.
치료제 계보는 바이엘의 넥사바(소라페닙) 단독 시대에서, 에자이의 렌비마(렌바티닙)를 거쳐, 로슈의 면역항암제 병용 티쎈트릭+아바스틴이 1차 표준을 차지하며 면역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올해 학회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더발루맙) 병용요법이 수술 전후의 조기 단계까지 영토를 넓히는 데이터가 이어졌습니다 — 말기에서 시작한 면역항암제가 점점 병의 앞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이게 간암 시장의 큰 흐름입니다.
췌장암 — 40년 만에 열린 문
췌장은 인슐린과 글루카곤, 소화액을 만드는 장기인데, 몸속 깊숙이 숨어 있어 조기 발견이 극히 어렵습니다. 발견 시 이미 원격 전이가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5년 생존율이 주요 암 중 최하위권입니다. 간이 침묵의 장기라면 췌장은 아예 잠수 타는 장기입니다 — 연락이 왔을 땐 이미 일이 커져 있습니다.
수십 년간 세포독성 항암제 조합(폴피리녹스 등)이 사실상 전부였던 이 암에서, 올해 종양학계 최대 뉴스가 터졌습니다. 췌장암의 약 90%는 KRAS 변이가 원인인데, 미국 레볼루션 메디슨즈의 차세대 RAS 억제제 다락소나십(daraxonrasib)이 3상(RASolute 302)에서 기존 치료 대비 전체생존기간을 사실상 두 배 수준으로 늘린 결과를 내놓은 겁니다. 올해 ASCO 학회의 최고 무대(플레너리 세션)에 오르고 FDA 신약 심사가 시작됐습니다 — 지난 글에서 배운 '구두발표의 급'으로 치면 이건 헤드라이너급입니다. 40년간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에, KRAS를 노리는 전 세계 후발 파이프라인들의 몸값이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시 모더나 — 암백신은 어디에 서 있나
이제 모더나 이슈를 이 지도 위에 놓아 보겠습니다. 모더나가 머크(키트루다의 주인)와 함께 개발 중인 mRNA 암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mRNA-4157)은 환자 종양의 유전자 변이를 읽어 그 환자만의 항원 목록으로 맞춤 제작하는 백신입니다.
데이터도 구체화됐습니다. 고위험 흑색종 수술 후 환자에게 키트루다와 병용한 결과, 5년 추적에서도 재발·사망 위험을 절반 가까이(약 49%) 줄이는 효과가 유지됐다는 장기 데이터가 올해 학회에서 공개됐고, 후기 임상의 성공 소식까지 이어지며 이번 랠리에 불을 붙였습니다. 흑색종에서 검증되면 폐암 등 다른 암으로 확장하는 게 다음 수순입니다.
암 치료의 역사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 융단폭격(화학요법)에서 저격(표적치료)으로, 저격에서 아군 훈련(면역항암제)으로, 그리고 이제 맞춤 훈련(개인화 암백신)으로. 모더나 랠리는 이 마지막 챕터에 대한 선불 입금이고, 입금이 데이터로 정산되는 무대는 늘 그렇듯 학회입니다.
체크리스트
①암 관련 뉴스는 먼저 '어느 암, 어느 표적'인지부터 — EGFR(폐암)·HER2(유방암)·BCR-ABL(백혈병)·KRAS(대장·췌장암)·PSMA(전립선암)만 알아도 공시의 절반이 읽힙니다 ②표준치료의 교체가 가장 큰 재료 — 렉라자 병용의 OS 승리, 엔허투의 1차 치료 입성처럼 '1차 표준'이 바뀌면 매출 지도가 통째로 바뀝니다 ③치료 시점의 전진 = 시장의 배수 확장 — 플루빅토·임핀지처럼 말기→조기로 올라가는 약을 주목 ④KRAS와 방사성 리간드는 지금 열리는 새 장르 — 다락소나십의 FDA 심사 일정과 국내 후발주자(리가켐바이오의 ADC, 퓨쳐켐의 RLT)를 볼 것 ⑤암백신은 흑색종 다음이 승부처 — 폐암 확장 데이터와 학회 발표 일정이 다음 정산일입니다.
바이오 시리즈 4편째입니다. 학회 달력 → 재무 체크리스트 → 용어 상식 → 오늘의 암 지도까지 왔으니, 이제 어떤 바이오 뉴스가 떠도 좌표는 찍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