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FOMO)와 조모(JOMO) — 대한민국의 허리가 흔들린다 [기획 1부] 개미들은 왜 하필 꼭대기에서 샀나
이 글은, 솔직히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 씁니다.
너무도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라고 해야 할지, 허탈이라고 해야 할지 — 그 무엇으로도 지금 이 상황을 온전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 상황을 알려야 했기에, 기록해야 했기에 글을 씁니다.
30년 주식판에 있으면서 상승장도 폭락장도 숱하게 봤지만, 올해 여름 같은 장은 처음입니다. 지수는 사상 최고권인데 개미들의 계좌는 초상집인 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종목이 시장의 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동안, 그 두 종목을 못 가진 나머지 전부는 — 우량주도, 배당주도, 코스닥의 성장주도 — 줄줄이 미끄러졌습니다. 지수만 보고 "역대급 강세장"이라던 뉴스와, 반토막 계좌를 쥔 채 잠 못 드는 사람들 사이의 이 거대한 간극. 오늘부터 세 번에 걸쳐 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부는 포모(FOMO) —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을 하필 꼭대기로 밀어 넣었는가입니다.
포모란 무엇인가 — 소외의 공포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는 '나만 놓치고 있다는 공포'입니다.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는 그 반대 — '놓치는 것의 즐거움', 즉 남들이 뭘 하든 휩쓸리지 않는 평온입니다.
주식판의 포모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옆자리 동료가 반도체주로 몇 천을 벌었답니다. 단톡방에는 계좌 인증이 올라옵니다. 뉴스는 연일 신고가를 외칩니다. 처음엔 "나는 안 해" 하던 사람도 석 달을 버티면 무너집니다. 그리고 무너지는 시점은 잔인하게도 가장 많이 오른 다음입니다. 포모는 바닥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 바닥에서는 아무도 부러워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포모가 최고조에 달하는 자리는 정의상 꼭대기 근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개미가 늘 꼭대기에서 사는 구조적 이유입니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인간이라서 그렇습니다.
올여름, 포모는 이렇게 조립됐다
그런데 이번 장의 포모는 개인의 심리로만 설명이 안 됩니다. 사회 전체가 포모를 조립해서 배달했습니다.
정부가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부동산이 아니라 주식이라고, 자본시장으로 오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 말을 믿고 평생 부동산만 알던 40~50대가, 은퇴자금을 굴리던 60대가 난생처음 증권 계좌를 열고 '우량주'를 샀습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아니라, 이름을 아는 안전해 보이는 대형주들을요.
시장은 그 우량주를 배신했습니다. 유동성이 삼전·닉스 두 종목으로 쏠리면서, 두 종목과 그 밸류체인을 제외한 우량주 섹터가 전부 소외됐습니다. 지수는 두 종목이 끌어올리니 사상 최고인데 내 계좌의 '안전한 대형주'는 마이너스 — 처음 온 사람들 눈에 이 장은 "삼전·닉스를 안 산 내가 바보"라는 결론만 남깁니다.
그래서 뒤늦게 갈아탔습니다. 최고점 부근에서, 그것도 성에 안 차 신용과 미수와 대출을 얹어서. 증권사들은 때맞춰 신용 한도를 늘렸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같은 화끈한 상품이 진열대에 올랐습니다. 청년들은 카드론으로, 가장들은 마이너스통장으로 올라탔습니다.
그 다음은 다들 아는 대로입니다. 급락이 왔고, 사이드카가 울렸고, 반대매매가 계좌를 쓸었습니다. 오르는 데 반년 걸린 종목이 내리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했습니다.
사이드카보다 무서운 것 — 손절을 '못 하는' 두려움
겪어본 사람만 아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매도 사이드카보다 훨씬 무서운 게 매도 서킷브레이커입니다. 7월 한 달 동안 이 매도 서킷브레이커가 예닐곱 차례 — 비공식적인 일시 냉각까지 치면 여덟 번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도 드물던 일이 한 주에 두 번꼴로 벌어진 겁니다. 거래가 멈춘 화면 앞에서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풀리면 더 밀릴 걸 알면서도, 그저 기다리는 것뿐.
그리고 여기서 사람의 심리가 뒤집힙니다. 흔히 손절이 무섭다고 하지만, 이 국면의 진짜 공포는 반대입니다 — 손절하는 순간 이 손실이 '확정'될까 봐, 무서워서 손절을 못 하는 두려움입니다. 팔면 끝이니까, 겁이 나서 반등만 기다립니다. 그런데 시장은 잔인하게도 거의 매일 종가가 그날의 최저가였습니다. 오늘 못 판 가격이 내일의 고가가 되는 날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 남은 쌈짓돈마저 탈탈 털려 나가는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투자 실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급소만 골라 때리는 장이었습니다.
무너진 것은 계좌가 아니라 일상이다
여기서부터가 제가 정말 화가 나는 대목입니다.
반대매매로 청산당한 청년의 손에 남는 것은 '0원이 된 계좌'가 아니라 원금이 사라지고도 남은 빚입니다. 은퇴자금을 넣은 50~60대에게 반토막은 '평가손실'이라는 점잖은 단어가 아니라 평생 모은 돈이 반으로 접힌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무너지는 건 시세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아침에 눈 뜨면 시세부터 확인하는 사람, 가족 앞에서 말수가 줄어든 가장, 고정비와 생활비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 밤, 무기력과 우울감 — 심하면 삶을 놓아버릴 생각까지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중산층의 허리가 이렇게 꺾입니다. 주가는 통계지만 이 고통은 통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책임지는 곳이 없습니다. 정부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입장이고, 신용 한도를 늘려줄 때는 웃던 증권사들은 주가가 빠지자 자기들 마음대로 한도를 줄이고 담보비율을 조입니다. 올라탈 사다리는 빌려주고 떨어질 때 사다리를 걷어차는 — 이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2부에서 구조 그대로 따져 묻겠습니다.
포모의 해독제는 정보가 아니라 원칙이다
1부를 맺으며 하나만 말씀드립니다. 포모에 당한 분들께 "공부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포모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공포와 부러움은 분석보다 언제나 빠릅니다.
그래서 해독제는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미리 정해둔 원칙입니다. 살 종목보다 살 금액을 먼저 정하는 것, 빚으로는 사지 않는 것, 남의 수익률이 아니라 내 계획 대비로만 채점하는 것. 원칙은 시시하지만, 시시한 것만이 공포보다 빠릅니다.
다음 2부에서는 이 포모를 조립한 손들 — 정부의 신호, 증권사의 신용 장사, 레버리지 상품의 설계 — 을 하나씩 뜯습니다. 그리고 3부에서 조모(JOMO), 휩쓸리지 않는 투자자로 살아남는 법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글을 반토막 계좌 앞에서 읽고 계신 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만은 시장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이겨내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대로 무너지면 고통과 슬픔은 고스란히 남는 사람들의 몫이 되고, 내 주변의 기쁨과 행복마저 함께 앗아갑니다. 돈은 잃었어도 그것까지 내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고, 지금이라도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소소한 행복부터 다시 찾으시길 바랍니다. 맛있는 것도 한 끼 챙겨 드시고, 가족에게 정성을 다하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통 드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미안하다고 —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 보십시오. 힘든 상황일수록 오히려 더 활발하게, 더 즐겁게, 더 행복하게 지내야 합니다. 웅크린 자리에는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긍정의 에너지가 반드시 돌아옵니다. 이 고통은 혼자 삼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계좌는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시장은 내일도 열리고, 기회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옵니다. 혼자 감당하기 벅찬 분은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와 꼭 이야기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 사람은 대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