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로 비행기를 띄운다고? —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뒷문 4개'
올여름 해외여행 다녀오신 분들, 항공권 결제창에서 한 번씩 멈칫하셨을 겁니다. 유류할증료가 세 배 안팎으로 뛰었던 날이 있었으니까요.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이 발이 묶이면, 며칠 뒤 인천공항 출발 항공권이 비싸집니다. 우리 밥상 물가부터 비행기 표값까지, 이 나라의 거의 모든 가격표 뒤에는 원유가 서 있습니다.
그런데 대전의 한 연구실에서는 지금, 그 원유를 슬쩍 빼놓고 살아보는 실험이 한창입니다. 한국화학연구원 이야기입니다.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 현장을 비췄는데, 보고 나서 이건 글로 정리해둘 가치가 있다 싶었습니다. 석유 없는 나라가 석유 없이 사는 법, 말하자면 '뒷문'을 네 개나 뚫고 있었거든요.
먼저, 나프타라는 밀가루 이야기
석유화학을 라면 공장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원유는 밀이고, 나프타는 밀가루입니다. 원유를 증류하면 15~20%쯤 나오는 투명한 액체가 나프타인데, 이걸 다시 850도 가마솥(NCC 공정)에서 분해하면 에틸렌·프로필렌 같은 올레핀, 그러니까 면발 반죽이 나옵니다. 이 반죽으로 플라스틱, 섬유, 페인트, 화장품 용기까지 뽑아내는 게 석유화학 산업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밀농사를 한 톨도 못 짓는 나라라는 점이지요. 밀이 안 들어오면 밀가루도, 면발도, 라면도 없습니다. 요즘 '납사 대란'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한국화학연구원이 뚫은 첫 번째 뒷문은 가마솥의 불부터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촉매 기술로 분해 온도를 850도에서 650~700도까지 끌어내렸습니다. 150도 차이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공장 규모에서 이건 가스비와 탄소배출이 통째로 줄어드는 얘기입니다. 같은 밀가루로 면을 뽑되, 장작을 덜 때는 법을 찾은 셈입니다.
제철소 굴뚝 연기가 라면 반죽이 된다면
두 번째 뒷문이 재미있습니다. 광양제철소에서는 쇳물을 만들 때 나오는 고로 부생가스(BFG)로 올레핀을 만드는 실증이 이뤄졌습니다. 제철소 굴뚝으로 날아가던 탄소를 붙잡아 화학제품의 원료로 쓰는 겁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자리 잡으면 국내에서만 연간 300만 톤 규모의 올레핀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밀가루를 수입하는 대신, 옆집 대장간에서 나오는 김으로 반죽을 치는 격이랄까요.
세 번째는 한술 더 뜹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이산화탄소를 수소와 반응시켜 곧장 액체 탄화수소를 만드는 공정입니다. 원래 이 일은 두 단계였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일산화탄소로 바꾸고, 800도 이상 고온에서 다시 탄화수소로 전환하는 번거로운 길이었지요.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촉매로 이 두 단계를 하나로 줄여, 300도에서 바로 액체를 뽑아냈습니다. 내뿜은 한숨으로 다시 밥을 짓는 기술입니다.
물론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이 길의 관건은 수소 가격입니다. 연구진 스스로도 수소 경제가 무르익어야 경제성이 생기고, 그때가 와도 기존 나프타의 두 배 수준일 거라고 담백하게 인정합니다. 저는 이 대목이 오히려 미더웠습니다. 장밋빛 전망 대신 가격표를 먼저 말하는 연구는 믿을 만합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로 비행기를
네 번째 뒷문이 이 글의 제목입니다. 항공유는 연료 중에서도 귀족입니다. 영하 40도 고공에서 얼지 않아야 하고, 엔진 안에서 한결같이 타야 합니다. 한국은 원유 한 방울 안 나면서 이 까다로운 항공유를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인데, 그 출발점은 역시 수입 원유입니다. 원유가 끊기면 항공유 수출도 멈춥니다.
그래서 연구진이 찾아낸 원료가 놀랍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가축 분뇨, 하수 찌꺼기. 이런 유기성 폐기물이 미생물에 분해되면 메탄이 주성분인 바이오가스가 나오는데, 이걸 개질해 합성가스로 바꾸고, 반응기를 거치면 항공유가 방울방울 모입니다. 분자 구조도, 성분도, 엔진이 요구하는 성능도 기존 항공유와 같습니다. 다른 것은 단 하나, 출발점이 유전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통이라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축산 농가와 매립지에서 메탄이 대기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냥 두면 이산화탄소보다 독한 온실가스인데, 붙잡으면 비행기를 띄우는 연료가 됩니다. 버려지는 것과 날아오르는 것의 차이가 포집 기술 하나에 달려 있다는 게, 어쩐지 투자와도 닮았습니다. 남들이 쓰레기라 부르는 곳에서 보물을 알아보는 눈 말입니다 ^^;
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당장 내일 주가에 반영될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부분 실증 단계고, 경제성의 열쇠(수소 가격, 포집 비용)는 아직 자물쇠 안에 있습니다. 다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을 의무화하는 흐름이 시작됐고, 탄소를 '버리는 비용'이 커질수록 탄소를 '되쓰는 기술'의 몸값은 오릅니다. 석유화학이 납사 대란에 시달리는 지금, 원료의 출구를 다변화하는 기술은 언젠가 이 산업의 생존 문제가 됩니다.
이런 글감을 다룰 때 저희 원칙은 하나입니다. 기술이 뉴스가 되는 날과 실적이 되는 날은 다르다는 것. 오늘은 뒷문이 어디에 뚫리고 있는지 지도를 그려두는 날이고, 그 문으로 실제 돈이 드나들기 시작하는 날, 그때 종목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정유 강국이 된 것도 처음엔 다들 무모하다 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로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오늘의 실험실이, 20년 뒤 어떤 산업의 교과서 첫 페이지가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 본 글은 한국화학연구원의 공개된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정보·교양 목적의 글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