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DC 해저케이블 만드는 회사는 한 손에 꼽힙니다 —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2030년, 대한전선 수주잔고 4조·LS 20조가 말하는 것 (AI 전력 인프라 ②)
①편에서 변압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GPU는 몇 달이면 오는데 변전소용 변압기는 5년을 기다린다고요.
그런데 변압기가 와도 끝이 아닙니다. 전기는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이 다릅니다. 발전소는 바닷가나 산속에 있고, 데이터센터는 도시 옆에 있습니다. 그 사이를 잇는 게 케이블입니다. 이번 편은 그 길 이야기입니다.
먼저 결론 하나를 놓고 시작하겠습니다. 변압기보다 이쪽 문이 더 좁습니다.
초고압 직류 케이블을 만드는 회사는 한 손에 꼽힙니다
전기를 먼 거리로, 특히 바다 밑으로 보낼 때는 교류(AC)가 아니라 직류(DC) 로 보냅니다. 먼 거리에서 손실이 적고, 바다 밑 수백 킬로미터를 한 줄로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HVDC(초고압 직류 송전) 라고 부릅니다. 유럽의 해상풍력을 육지로 끌어오는 선, 나라와 나라 사이를 잇는 선이 대부분 이겁니다.
문제는 이 케이블을 아무나 못 만든다는 것입니다. 525kV급 HVDC 해저케이블을 양산하는 회사로는 LS전선, 프리즈미안(이탈리아), 넥상스(프랑스), NKT(덴마크) 네 곳 정도가 꼽히고, 이들이 세계 HVDC 케이블 시장의 80% 안팎을 차지합니다(2026년 4월 스트레이트뉴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인용 보도). 대한전선은 당진에 525kV HVDC 생산라인을 짓고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는 골드만삭스가 넥상스 투자의견을 올리며 낸 숫자가 잘 보여 줍니다. 유럽 10개년 전력망 개발계획(2024년판)을 기준으로 HVDC 수요는 2032년까지 연평균 10% 늘고 공급은 6% 늘어, 2027년부터는 수요가 공급을 20% 이상 앞선다는 계산입니다. 새로 뛰어든 회사들의 공장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변압기 5년과 같은 구조입니다. 돈이 있어도 줄이 안 줄어듭니다.
데이터센터가 만든 새 줄
이 줄에 데이터센터가 끼어들었습니다. 미국 뉴욕주가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잠정 중단하는 행정명령(62호)을 내면서 근거로 든 숫자가 있습니다. 2026년 5월 기준 뉴욕 전력망에 접속을 신청하고 대기 중인 데이터센터 부하가 12기가와트 가까이 되고, 그중 8기가와트 넘는 물량이 2025년 한 해에 새로 줄을 섰다는 것입니다. 1기가와트급 원전 열두 기 몫의 전기를 새로 끌어와야 하는데, 발전소보다 먼저 막히는 게 송전선입니다.
한국 회사들의 장부에도 이 수요가 찍혀 있습니다. LS전선은 2026년 상반기 실적을 설명하면서 초고압 해저케이블과 함께 미국 AI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나눠 주는 버스덕트 수주를 이익 개선 이유로 들었고, 대한전선은 2분기 실적의 배경으로 북미와 싱가포르 등 해외 전력망 물량을 들었습니다.
두 회사의 장부
수주 사업은 장부부터 봅니다. ①편에서 전력 빅3의 수주잔고를 봤듯이, 케이블도 같은 숫자를 봅니다.
| 2024년 말 | 2025년 말 | 2026년 2분기 말 | |
|---|---|---|---|
| 대한전선 수주잔고 | 2조 8,181억 | 3조 6,633억 (+30.0%) | 4조 629억 (창사 첫 4조) |
| LS전선 수주잔고 | 6조 2,741억 | 7조 6,300억 (+21.6%) | — |
| LS 계열 합산(LS전선·LS일렉트릭 등) | 19조 5,554억 |
대한전선의 2026년 2분기는 이렇습니다. 매출 1조 1,987억 원(전년 동기 대비 +30.8%), 영업이익 608억 원(+113%) 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상반기 영업이익 1,213억 원은 2025년 한 해 영업이익 1,286억 원의 94%를 반년 만에 채운 숫자입니다. 2분기 신규 수주는 7,272억 원이었습니다.
LS 쪽은 그룹 전체로 봐야 합니다. LS는 2026년 2분기 매출 11조 236억 원(+40%), 영업이익 5,956억 원(+153%)을 냈고, 상반기 영업이익 1조 717억 원으로 2025년 연간 1조 526억 원을 반년 만에 넘겼습니다. 그중 LS전선이 상반기 매출 4조 5,232억 원, 영업이익 2,384억 원입니다. 합산 수주잔고 19조 5,554억 원은 LS일렉트릭의 변압기·배전반까지 합친 숫자라 케이블만의 장부는 아닙니다. 같은 기준끼리 비교하려면 표의 첫 두 줄을 보시면 됩니다.
수주잔고는 식당의 예약 장부입니다. 이번 달 매출은 지난달의 예약이고, 내년 매출은 지금 장부에 적히는 이름입니다.
장부를 채우는 두 가지 힘 — 공장과 배
케이블 회사의 장부는 두 가지가 채웁니다. 만들 공장이 있느냐, 그리고 바다에 깔 배가 있느냐.
공장. LS전선은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 약 1조 원을 들여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2027년 3분기 완공, 2028년 1분기 양산이 목표이고, 완공되면 HVDC 해저케이블을 연간 500km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2026년 8월 이 공장에 3,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LS그룹은 2030년까지 미국 전력 인프라에 3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한전선은 당진 해저 1공장에 이어 640kV HVDC 해저케이블을 만들 수 있는 해저 2공장을 짓고 있고, 2025년 12월 해저케이블 분야 「공급망안정화 선도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배. 해저케이블은 만드는 것 못지않게 까는 게 일입니다. 수천 톤짜리 케이블을 배에 감아 바다에 내려놓고 땅에 묻어야 합니다. 대한전선은 1만 1,000톤급 포설선 「스칸디 커넥터」를 확보해 기존 「팔로스」와 함께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설선 두 척을 갖췄습니다. 설계·생산·운송·포설·매설을 한 회사가 다 하는 것을 턴키라고 하는데, 그게 되는 회사가 발주처 입장에서는 줄을 세워 줄 만한 회사입니다. 2026년 8월에는 국내 해역에 맞는 매설 로봇을 국산화하겠다며 로봇 회사와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제일 큰 발주가 오고 있습니다
이 케이블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 지금 한국에도 있습니다. 한전의 「서해안 HVDC 에너지고속도로」 입니다. 서해안의 대규모 해상풍력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HVDC 송전망 4개를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짓는 계획인데, 한전은 2026년 3월 이 사업의 해저케이블 경과지 설계에 착수했다고 밝히면서 시간표를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 새만금~수도권 1단계 구간을 당초보다 1년 앞당겨 2030년 완공
- HVDC 송전망은 통상 9년 이상 걸리지만 공정을 줄여 맞춘다
- 기본설계를 2026년 안에 끝내고 2027년 초 해저케이블 공사를 발주해 계약자를 선정
- 원래 계약 뒤에 케이블 회사가 하던 해양 조사를 한전이 미리 해 두어, 계약 즉시 생산에 들어가게 한다
- 국내 케이블 제조사와 협의체를 만들어 대량 생산 능력을 미리 확보하고, 초대형 포설선 도입도 추진
마지막 줄이 이번 편의 핵심입니다. 발주처가 「계약하면 만들어 달라」가 아니라 「만들 자리를 미리 잡아 두겠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줄이 길다는 것을 발주처가 먼저 인정한 셈입니다. 대한전선이 2026년 7월 기업설명회에서 500kV HVDC 동해안~동서울 건설공사(EP2단계) 수주를 언급하며 HVDC 설계·생산·시험·시공 역량을 강조한 것도 이 발주를 앞둔 이야기입니다.
케이블 장부를 읽을 때 더 볼 것
①편의 세 가지 — 수주잔고가 늘고 있는가, 새 수주의 이익률이 옛 수주보다 높은가, 증설을 얼마나 하는가 — 는 여기도 그대로입니다. 케이블에는 둘이 더 붙습니다.
첫째, 구리입니다. 케이블 원가의 큰 몫이 구리라서 구리값이 오르면 이익이 흔들릴 것 같지만, 대형 공급계약에는 대개 원자재 가격을 판가에 연동하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리값보다 계약에 연동 조항이 있는지를 봅니다.
둘째, 시간입니다. 해저케이블은 수주에서 매출까지 2~4년이 걸립니다. 지금 장부에 적힌 4조 원은 올해 매출이 아니라 2027~2029년 매출입니다. 반대로 지금 매출은 2~3년 전 계약의 값입니다. 주가는 장부를 보고 움직이고, 실적은 그 뒤를 따라옵니다.
장부에 적힌 숫자는 약속이고, 매출은 그 약속이 지켜진 뒤의 일입니다.
그리고 이 줄이 짧아지는 방식
①편과 같은 결말이 기다립니다. 줄이 길면 다들 공장을 짓습니다. LS전선의 체서피크 공장은 2028년에 돌기 시작하고, 대한전선의 해저 2공장도 뒤따릅니다. 유럽 세 회사도 증설 중이고, 골드만삭스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 신규 진입자들의 공장도 언젠가는 돌아갑니다.
다만 케이블 쪽 줄은 변압기보다 천천히 짧아질 이유가 있습니다. 공장을 지어도 525kV급을 실제로 바다에 깔아 검증받는 데 다시 몇 년이 걸리고, 배는 공장보다 더 귀합니다. 한전이 「제조사와 협의체를 만들어 생산 능력을 미리 확보하겠다」고 한 것 자체가, 2030년까지는 이 줄이 안 풀린다고 발주처가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원칙은 같습니다. 줄이 짧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이 업종 이익률의 고점이고, 그 시점은 증설 계획표에 적혀 있습니다. 2027년 초 서해안 발주가 어느 회사에 얼마로 돌아가는지, 2028년 체서피크 공장이 첫 물량을 내는지, 이 둘이 다음 이정표입니다.
마지막으로
변압기는 1890년대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해저케이블은 그보다 더 오래됐습니다. 185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 바다 밑에 전신용 케이블이 처음 깔렸습니다. 그 뒤로 170년 동안 굵어지고 길어지기만 했습니다.
AI가 세상에서 제일 새로운 기계를 돌리려고,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길을 다시 깔고 있습니다.
전기는 만드는 쪽이 아니라 옮기는 쪽에서 막힙니다.
---
*실측 출처 — 수주잔고·실적: 대한전선 2026년 2분기 잠정실적(2026.07.30, 매출 1조 1,987억·영업이익 608억·신규수주 7,272억·수주잔고 4조 629억, 2024년 말 2조 8,181억·2025년 말 3조 6,633억은 회사가 공개한 6개년 실적표) 및 대한전선 반기보고서(2026.06, DART 접수번호 20260814003722); 보도는 머니투데이 「대한전선, 2분기 영업익 608억 '역대 최대'…수주잔고 첫 4조 돌파」(2026.07.30), 전기신문 「대한전선,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 수주잔고 첫 4조원 돌파」(2026.07.30, 6개년 실적표 수록). LS 2026년 2분기·상반기 실적과 합산 수주잔고 19조 5,554억: LS 반기보고서(2026.06, DART 접수번호 20260814001888), ZDNet Korea 「전력 호황 탄 LS, 상반기 수주잔고 20조원·영업익 1조원」(2026.08.14), LS전선 상반기 매출·영업이익은 서울경제 「'전력 메가사이클' 탄 LS, 상반기 영업익 1조 신기록」(2026.08.14). 2025년 말 LS전선 수주잔고와 525kV HVDC 4개사·점유율 80%: 스트레이트뉴스 「LS·대한전선, 수주잔고 10조 고지 돌파」(2026.04.10,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인용).*
*체서피크 공장: 약 1조 원, 2027년 3분기 완공·2028년 1분기 양산 목표는 한국경제 「LS, 1조 들여 美최대 해저케이블 공장 짓는다」(2025.04.29), 연간 500km·수출입은행 3,000억 원 지원은 뉴스핌 (2026.08.24). 대한전선 해저 2공장(640kV)·포설선 2척·매설 로봇 국산화·공급망안정화 선도사업자: 전기신문 (2026.08.20).*
*서해안 HVDC 에너지고속도로 시간표(1단계 2030년, 2027년 초 발주, 제조사 협의체): 연합뉴스 「한전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속도…2030년 1단계 완공 목표」(2026.03.19). 뉴욕주 데이터센터 접속 대기 12GW·2025년 8GW: 뉴욕주지사 행정명령 62호. HVDC 수요 연 10%·공급 6%·2027년부터 20% 이상 부족: Yahoo Finance 「Goldman Sachs upgrades Nexans to Buy on stronger HVDC market」(Investing.com 기사 전재) — 증권사 전망치로, 가정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수주잔고는 회사·매체마다 집계 기준(계열 포함 범위, 환율, 인식 시점)이 달라 같은 시점도 금액이 다르게 잡힐 수 있습니다. 최초 해저 전신 케이블(1850년 영국~프랑스)은 역사적 사실을 일반적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본문의 기업명은 산업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