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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자기가 다니던 회사가 좋은 회사인 줄 몰랐습니다

2026-08-27 · 상한가클럽

오늘이 아들 생일입니다. 스물다섯 살이 됐습니다.

차를 한 대 사주려고 했습니다. 못 사줬습니다. 얼마 전에 강남에 매장을 하나 더 내면서 보증금 일부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못 해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차 대신 글을 씁니다. 못 사준 사람이 글을 쓰는 건 대개 변명입니다만, 그래도 씁니다.

열여덟에 정해진 줄

아들은 마이스터고를 나왔습니다.

대학을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취업하는 학교입니다. 시가총액 5조 원대 반도체 장비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본사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잘 풀린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 삼성에 가고 공기업에 갔기 때문입니다. 열여덟, 열아홉에 각자 이름표를 하나씩 달았는데 그 이름표가 계속 따라다닌 겁니다. 모이면 그 순서대로 앉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더 이상한 건 이겁니다.

아들은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그렇게 좋은 회사인 줄도 몰랐습니다. 시가총액이 얼마인지, 그 업계에서 어떤 위치인지, 본사 근무가 어떤 의미인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삼성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하나로 이미 결론이 나 있었던 겁니다.

이건 회사 탓이 아니라 자를 잘못 든 탓입니다

저는 그게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주식으로 치면 이런 겁니다. 좋은 종목을 들고 있으면서 자기 계좌는 안 보고 옆 사람 계좌만 봅니다. 저쪽이 오르니까 이건 아닌가 보다 하고 팝니다. 나중에 보면 자기가 팔았던 게 제일 많이 올라 있습니다.

30년 동안 그런 사람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종목이 나빠서 진 게 아니라 남의 계좌를 보다가 졌습니다.

삼성이라는 자 하나로 재면 대한민국 회사 대부분이 실패작이 됩니다. 그 자는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자입니다. 그런데 열여덟짜리한테는 그 자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그것만 쥐여줬으니까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다른 자를 하나 더 쥐여주는 것뿐인데, 저는 그걸 제때 못 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각자 깨어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초등학교 때 학생회장을 했습니다. 방송부에서 아나운서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냥 애들 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마이크 잡고 점심시간에 음악 틀어주는 것 말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온라인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방송을 하면서 명품을 조금씩 거래했습니다. 취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새벽에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에도 등록해서 질문에 답을 달아주고 있었습니다. 그건 돈이 안 되는 일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올린 사진을 들여다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봐주는 겁니다. 한 푼도 안 나옵니다. 그걸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낮과 밤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젊은 애가 밤낮이 바뀌면 몸이 먼저 상합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지금의 바닥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볼 때 혼자 쌓은 시간이요.

여기서 좀 이상한 일을 하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도 새벽에 일합니다. 시황 정리하다 보면 세 시가 넘어갑니다. 커피는 식어 있고 창밖은 아직 캄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부자는 몇 년 동안 같은 시간에 각자 깨어 있었던 겁니다. 한 사람은 차트를 보고 한 사람은 가방을 봤습니다. 서로 그걸 몰랐습니다.

몰랐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서로 말을 안 합니다.

연락 자체가 몇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입니다. 그나마 용건이 있을 때뿐입니다. 안부는 서로 묻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 일만 묵묵히 합니다. 어느 집은 저녁마다 통화를 한다던데 우리는 그게 안 됩니다.

사이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저도 제 아버지한테 그랬고 아마 그 위로도 그랬을 겁니다. 이 집 남자들은 대대로 할 말을 삼키고 삽니다. 그게 무슨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지난 대화를 한번 뒤져봤습니다.

몇 달 치가 몇 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아들이 새벽에 뭘 하는지 몰랐고, 무슨 상을 받았는지도 몰랐고, 돈이 모자란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말을 안 하면 모릅니다. 당연한 건데 그걸 몰랐습니다.

이걸 알고 난 뒤로 새벽이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나온다고 했을 때 찬성했습니다

몇 해 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나와서 명품 감정을 제대로 해보겠다고요.

저는 찬성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의아해했습니다. 시장에서 30년 보낸 사람이면 말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제가 찬성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갑자기 나온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몇 년째 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새벽마다 쌓은 게 있었고, 거래를 해봤고, 남의 물건을 봐준 시간이 있었습니다. 맨몸으로 뛰어내린 게 아니라 이미 반쯤 건너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정한 일이었습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힘들면 남 탓을 하지만, 자기가 정한 일은 힘들어도 끝까지 갑니다. 저는 그 차이가 실력보다 크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그 아이한테는 자기 자가 필요했습니다. 남의 자로 계속 재면서는 어디를 가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보내주는 건 쉬웠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한 번도 안 하던 말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저한테 돈 달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했습니다.

한 번도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벌기 시작했으니 사회생활은 벌써 여섯 해째입니다. 서울에서 월세를 내고 삽니다. 벌어도 월세로 빠지니 모으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나중에 지나가듯 한 번 했습니다. 그때도 달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얼마 전 처음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매장 보증금이 조금 모자라니 보태줄 수 있겠냐고.

저는 못 해줬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저 말을 꺼내기까지 며칠을 망설였을까, 그거였습니다. 여태 한 번도 안 하던 말입니다. 입 밖에 내는 순간 자기 안에서 뭔가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을 꺼낸 것 자체를 자존심 상해하고 있을 게 뻔합니다. 제가 아는 아이라 압니다.

자식이 돈 얘기를 안 하는 걸 저는 오랫동안 효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건 신호였습니다. 아버지한테 기대지 않겠다고 진작에 혼자 정해버린 아이의 신호였습니다. 알아채는 데 그 세월이 다 걸렸습니다.

제일 걱정되는 건 매출이 아닙니다

몸은 단단한 편입니다. 합기도가 5단이고 유도와 주짓수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매트 위에서 컸습니다.

돌아보면 그 육 년을 버틴 게 그냥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에 혼자 방송하고, 돈도 안 되는 질문에 답을 달고, 낮밤이 바뀐 채로 몇 년입니다. 그건 근성이 없으면 못 합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걸 몇천 번 해본 사람이라야 되는 일입니다.

무도 하는 사람들 말로는 상대를 이기는 것보다 자기 중심을 지키는 게 먼저라고 하더군요. 그 말대로면 이 아이는 진작에 그걸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그런데도 밥이 걱정됩니다.

형제가 없습니다. 동생이나 형, 누나가 있으면 객지에서 서로 의지가 될 텐데 그게 없습니다. 혼자 자취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밥을 제때 못 챙겨 먹습니다.

5단이든 10단이든 끼니를 거르면 사람은 상합니다.

부모가 걱정하는 건 결국 그겁니다. 매출이 아니라 밥입니다.

명절 상에 나타나는 것

명품 감정이라는 일은 결국 신용 장사입니다. 판단 하나에 몇백만 원이 왔다 갔다 하고, 틀리면 돈만 잃는 게 아니라 신용을 잃습니다. 주식은 물려도 기다리면 언젠가 오지만 신용은 물타기가 안 됩니다.

그 신용을 이 아이가 어떻게 쌓고 있는지, 저는 좀 엉뚱한 데서 확인합니다.

명절에 제 아내가 받는 선물 중에 아들 친구들이 보낸 게 있습니다.

친구가 남의 부모한테 선물을 보내는 건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 어떻게 했는지가 거기서 드러납니다. 저는 매출 자료보다 그게 더 믿음이 갑니다.

돈 안 되는 지식인 답변을 몇 년씩 달던 아이입니다. 그런 게 쌓이면 사람이 남습니다.

내려올 때마다 제 아내 선물을 챙겨 옵니다.

아버지가 몰랐던 것들

이 글을 쓰다가 네이버에 아들 이름을 쳐봤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검색해보는 게 좀 우습습니다만, 어쨌든 쳐봤습니다.

자격증이 여섯 개 올라와 있었습니다. 여섯 개인 줄은 몰랐습니다.

상 받은 것 중에 아시아로하스 산업대전이 있는데, 그건 압니다. 같이 갔으니까요.

그날 옆자리에 앉아서 박수를 쳤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아들 일에 끼어본 게 그날이 거의 유일합니다. 돈을 보탠 것도 아니고 길을 터준 것도 아니고, 그냥 박수만 쳤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장면이 그날이었습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그것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 말입니다.

나머지는 몰랐습니다. 새벽에 방송하는 것도 몰랐고, 지식인에 답을 다는 것도 몰랐고, 자격증을 그렇게 챙긴 것도 몰랐습니다.

말을 안 했으니까요. 이 아이는 뭘 해도 말을 안 합니다. 돈 없는 것도 말을 안 했고 잘한 것도 말을 안 했습니다. 그 성격이 어디서 왔나 한참 생각해봤는데, 저를 닮은 거라면 그건 제 탓입니다.

자수성가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겠더군요. 도와준 사람이 없으면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타기와 불타기

강남 매장 소식을 듣고 먼저 떠오른 건 축하가 아니라 월세였습니다.

매장이 하나 늘면 매달 나가는 돈이 하나 늘어납니다. 손님이 없는 달에도 나갑니다. 그 계산이 먼저 됐습니다. 축하한다는 말은 그다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확장한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겁이 나면 확장을 안 합니다. 지키기만 합니다. 시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물타기는 겁먹은 사람이 하고 불타기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합니다. 둘 다 위험한 건 마찬가지지만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뒷걸음이고 하나는 앞걸음입니다.

해마다 큽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보다 낫습니다.

자수성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볼 때마다 조금 미안해집니다. 자수성가는 결국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니까요. 물려준 것도 없고, 보증금 보태달라는 부탁 한 번을 못 들어줬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지금 제대로 자수성가하는 중입니다.

남의 집 이야기인 줄 알았던 말이 우리 집 이야기가 됐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뒤통수가 서늘합니다. 그 말의 뒷면에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싼 가방

제 생일은 어버이날 즈음입니다.

올해 아들이 가방을 하나 보냈습니다. 사진을 먼저 보내고 그다음에 짧은 메시지가 왔습니다.

어버이날 겸 생신 선물입니다

값은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형편에 제가 저를 위해서는 사지 않을 물건이었습니다.

저는 그 가방을 아직 잘 못 듭니다. 들고 나가면 좋다는 소리를 듣는데, 저는 그걸 볼 때마다 이 아이가 몇 개를 팔아야 이만큼이 나오는지를 먼저 계산합니다. 직업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 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생일에 그 가방을 보냈고, 아버지는 아들 생일에 차 한 대를 못 사줬습니다. 보증금 얘기도 못 들어줬습니다.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제 휴대폰에 이 아이는 아직 '귀염둥이 아들'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제 매장을 두 개 굴리는 사장인데 말입니다. 바꿔야지 하면서 여태 안 바꾸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안 바꿀 것 같습니다.

순서를 다시 밟는 중입니다

요즘은 틈틈이 공부를 해서 내년쯤 대학원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취업한 아이가 육 년을 돌아서 이제 대학원을 봅니다. 남들이 스무 살에 밟은 순서를 자기 속도로 다시 밟는 겁니다. 남들 대학 졸업할 나이에 이 아이는 매장을 두 개 냈고, 이제야 학교를 봅니다. 순서가 뒤집혔을 뿐 빠진 건 없습니다. 장사하면서 공부까지 한다는 게 어떤 건지는 해본 사람만 압니다. 저는 안 해봤습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게 하나 있습니다.

요즘은 삼성 간 친구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좀 놀랐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바로 그것 때문에 좋은 자리를 좋은 줄도 모르고 견디지 못했던 아이입니다.

자기 자를 갖게 되면 남의 자가 안 보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매출이 늘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기준이 바뀌어서 그렇습니다. 이게 순서가 중요합니다. 돈을 벌면 당당해지는 게 아니라, 자기 기준이 생기면 그때부터 돈이 따라옵니다. 시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남 따라 사는 사람은 벌어도 불안하고, 자기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잃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하나가 보입니다.

초등학교 때 방송부에서 마이크를 잡던 아이가 지금도 마이크 앞에 앉아 있습니다. 십몇 년이 지났는데 자리가 같습니다. 그때는 점심시간이었고 지금은 새벽일 뿐입니다.

그리고 남의 자로 자기를 재던 아이가, 지금은 진짜와 가짜를 자기 눈으로 가려내는 일을 합니다. 감정이라는 게 결국 그런 일 아니겠습니까. 남이 붙여놓은 이름표가 아니라 물건 자체를 보는 것.

어쩌면 맞는 자리를 찾아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를 들고 있던 사람

여기까지 쓰고 한참 멈췄습니다.

제가 쓴 걸 다시 읽어보니, 아들이 삼성 간 친구들 때문에 회사를 못 견뎠다고 적어놨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아들 입으로 들은 적이 있던가.

없습니다.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제가 그렇게 봤습니다.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저 혼자 이유를 만들어낸 겁니다. 친구들은 삼성 갔는데 얘는 아니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요.

그러니까 삼성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건 아들이 아니라 저였을지 모릅니다.

이 글은 남의 자로 자기를 재던 아이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다 쓰고 보니 자를 들고 있던 사람이 저였습니다.

부모가 제일 무서운 게 이겁니다. 자식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불안을 얹어놓고, 그러면서 자식을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만족을 못 하는 것 같아 보였을 때, 저는 그 이유를 물어본 게 아니라 짐작했습니다. 짐작한 걸 육 년째 사실처럼 들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제가 남의 계좌 보다가 좋은 종목 파는 사람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도 남 얘기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저는 아들이라는 종목을 남의 자로 재고 있었습니다.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때 왜 나왔냐고.

이제 와서 묻는 게 우습지만 안 묻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우리가 말을 안 하고 살아서 여태 못 물어본 겁니다.

자녀가 비슷한 자리에 있는 분들께

아이가 돈 얘기를 안 한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그건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말 안 하기로 정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실 때 한 번만 의심해보십시오. 그게 아이가 한 말인지, 내가 만든 이야기인지.

그리고 "잘돼가?"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안 될 때는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요. 대신 "요즘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그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저도 잘 못 했습니다. 이제부터 하려고 합니다.

범철아, 생일 축하한다.

가방은 잘 쓰고 있다. 아까워서 자주는 못 든다.

차는 내년을 보고 있다. 아버지 형편이 좀 나아지면 그때 하겠다. 안 나아지면 할부로라도 하겠다.

아버지가 평생 할부를 안 썼다. 이자가 아까워서 그랬다. 그런데 이건 이자를 내고라도 하겠다. 30년 동안 한 푼 아끼자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았는데, 그 계산이 여기서는 안 서더라.

보증금 얘기도 잊지 않았다. 약속을 안 지킨 게 아니라 아직 못 지킨 거다. 늦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다.

이렇게 남들 다 보는 데다 적어놓으면 또 못 지킬까 봐 겁이 난다. 그런데 적어둔다.

적어놔야 지키게 되더라. 시장에서 배운 것 중에 이건 확실하다. 마음속으로만 정해둔 손절선은 반드시 무너진다. 적어놓은 것만 지켜진다.

그러니 이건 아버지 손절선이다. 내년에 이 글 다시 열어보겠다.

지난번에 돈 얘기 꺼낸 것, 그거 자존심 상해하지 마라. 여태껏 참다가 한 번 말한 거다. 참을 만큼 참았다. 아버지한테 기대는 건 원래 해도 되는 일이고, 네가 너무 늦게 한 거다.

그리고 하나 물어볼 게 있다.

너 그때 회사 왜 그만뒀냐. 친구들 삼성 간 거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여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더라.

아버지가 지어낸 거였다.

너는 신경도 안 쓰는데 아버지 혼자 신경 쓰고 있었던 거라면, 그거 미안하다. 아들 마음을 안다고 여태 살았는데 물어본 적이 없다.

언제 얘기해다오. 급하지 않다.

새벽에 방송할 때 아버지도 깨어 있다. 그동안 몰랐는데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는 알고 있어라.

그리고 상 받던 날 옆에서 박수 친 거, 그게 아버지가 너한테 해준 것 중에 제일 잘한 일 같다. 앞으로도 그 자리는 비워두지 마라. 아버지가 앉을 자리다.

마지막으로 하나.

우리 둘 다 말을 안 하고 산다. 그게 우리 방식인 줄 알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보니 그냥 안 한 거였다.

네가 여태 못 꺼낸 말이 있었듯이 아버지도 못 한 말이 있다.

사랑한다.

써놓고 보니 손발이 좀 오그라드는데 지우지는 않겠다. 네가 어렵게 한마디 했으니 아버지도 하나는 해야 셈이 맞다.

앞으로는 용건 없이도 전화해라. 아버지가 먼저 하겠다.

밥 잘 챙겨 먹어라. 그거 하나만 지켜라.

오늘 하루는 친구들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지내라. 아버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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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객관적 소개가 아니라 필자가 아버지로서 쓴 글임을 밝힙니다. 특정 업체나 서비스의 이용을 권유하지 않으며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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