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베낀 반도체, 뉴로모픽 — 20와트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 (차세대 컴퓨팅 ⑥)
우리 뇌는 전구 하나 값으로 돌아갑니다. 소비전력 약 20와트. 밥 한 공기와 커피 한 잔이면 하루 종일 번역하고, 운전하고, 농담하고, 주식도 합니다(가끔 그게 문제입니다만 ^^;). 반면 지금의 AI는 같은 흉내를 내는 데 원전급 전기를 씁니다. 데이터센터 전력난, 전기요금 뉴스가 남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래서 반도체 업계의 한쪽에서는 아예 질문을 바꿨습니다. "GPU를 더 빠르게"가 아니라, "뇌는 도대체 어떻게 20와트로 되는 건데?" 이 질문에서 나온 답이 오늘의 주인공,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입니다. 이름 그대로 '뉴런의 모양을 본뜬' 칩입니다.
요리사와 냉장고가 다른 건물에 있는 식당
지금의 컴퓨터가 전기를 많이 먹는 이유는 70년 된 설계 습관 때문입니다. 연산(CPU)과 기억(메모리)이 분리돼 있어서, 일을 하려면 데이터가 둘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야 합니다. 요리사와 냉장고가 다른 건물에 있는 식당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요리 실력이 아무리 늘어도, 재료 가지러 길을 건너는 시간과 기름값은 그대로입니다. 이게 교과서에 나오는 폰노이만 병목이고, AI처럼 데이터를 어마어마하게 옮기는 작업에서는 이 '길 건너는 비용'이 연산 자체보다 커집니다.
뇌에는 이 길이 없습니다. 뉴런(연산)과 시냅스(기억)가 한 몸으로 붙어 있습니다. 요리사 손 옆에 냉장고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요리사 손이 곧 냉장고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뇌는 필요할 때만 일합니다. 뉴런은 신호(스파이크)가 튈 때만 전기를 쓰고 평소엔 잠잠합니다. 냉장고 안 전구와 같습니다. 문을 열 때만 켜지지요. 지금의 GPU는 반대로, 온 집안 불을 24시간 켜놓고 사는 집입니다. 뉴로모픽 칩은 이 두 가지 — 연산과 기억의 한 몸, 그리고 '문 열 때만 켜지는 전구' — 를 실리콘으로 흉내 냅니다. 전문용어로는 스파이킹 뉴럴 네트워크(SNN), 이벤트 기반 처리라고 부릅니다.
지금 어디까지 왔나 — 솔직한 성적표
여기서부터는 장밋빛을 걷어내고 실제 성적표를 보겠습니다.
인텔은 '로이히 2' 칩 1,152개를 엮어 뉴런 11억 5천만 개짜리 시스템 '할라 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사람 뇌의 약 80분의 1 규모인데, 미국 국립연구소에 들어간 연구 장비지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IBM의 '노스폴'은 소형 언어모델 추론에서 GPU 대비 에너지 효율 수십 배를 시연했지만 역시 연구 단계입니다. 참고로 최근 "인텔 로이히 3 출시"라는 기사가 도는데, 인텔 공식 발표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출처 없는 반도체 뉴스는 대개 누군가의 희망사항입니다.
그럼 돈은 누가 벌고 있느냐.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뉴로모픽 상장사인 호주 브레인칩의 연환산 매출이 약 190만 달러입니다. 우리 돈 20억 원대. 이게 이 산업의 현주소입니다. 다만 흐름은 분명히 시작됐습니다. 네덜란드 이나테라가 마이크로와트급 뉴로모픽 칩을 올해 CES에서 실제 상용 제품에 태워 나왔고, 브레인칩도 방산·웨어러블용 칩 출하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전망은 한쪽이 2030년 13억 달러, 다른 쪽이 200억 달러 — 15배 차이가 납니다. 무엇을 뉴로모픽으로 셀지조차 합의가 안 됐다는 뜻으로, 시장이 그만큼 초기라는 가장 정직한 증거입니다.
한국의 자리 — 그리고 PIM이라는 징검다리
"그럼 한국은 구경만 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의 주력은 뉴로모픽 본진보다 반 발 앞의 현실적인 기술,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입니다. 메모리 안에 연산기를 심어 '길 건너는 비용'을 줄이는 기술인데, 뇌를 통째로 베끼는 대신 냉장고 안에 도마를 넣는 절충안이라 상용화가 훨씬 가깝습니다. 메모리 세계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바로 이 길목에 서 있습니다. 삼성은 온디바이스 AI용 저전력 PIM 메모리의 국제 표준화를 진행 중이고, SK하이닉스는 AI 추론 가속 카드를 계속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PIM 반도체에 2028년까지 4천억 원대를 투입하는 사업단을 돌리고 있습니다.
순수 뉴로모픽 쪽에서는 KAIST가 SNN과 기존 딥러닝을 결합한 초저전력 AI 칩을 국제 학회에서 시연했고, 국책과제로 SNN 프로세서를 개발 중인 코스닥 기업도 있습니다. 어느 회사들인지, 계약서가 실제로 있는 곳은 어디인지는 다음 편 관련주 총정리에서 등급을 나눠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투자자의 눈으로
이 기술의 시간표를 세 칸으로 그려두시면 됩니다. 단기는 PIM입니다. 표준화가 진행 중이고 온디바이스 AI라는 확실한 수요가 있습니다. 중기는 엣지 센서용 초저전력 SNN 칩. 배터리로 도는 기기에서 '항상 켜져 있어야 하는' 감지 기능은 GPU로는 물리적으로 안 되는 영역이라, 뉴로모픽의 첫 진짜 시장이 여기서 열리고 있습니다. 장기가 범용 뉴로모픽인데, 이건 아직 연구실의 시간입니다.
저희 원칙은 이번에도 같습니다. 기술이 뉴스가 되는 날과 실적이 되는 날은 다릅니다. 뉴로모픽은 뉴스는 화려하고 실적은 20억 원짜리인, 그 간극이 유난히 큰 동네입니다. 간극이 크다는 건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시간표를 아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서 그 시간표 위에 한국 종목들을 하나씩 올려보겠습니다.
※ 본 글은 기술·산업에 대한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