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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 가격은 왜 1,000원에 묶이고 불닭볶음면은 왜 22%를 남기나 — 농심 주가·삼양식품 주가·오리온 주가가 갈린 자리, 그리고 러시아의 초코파이와 도시락

2026-09-05 · 상한가클럽

2023년 6월 18일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경제부총리가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밀가루 값이 내렸으니 라면 회사들이 가격을 좀 내려줬으면 좋겠다고요.

열사흘 뒤, 농심이 신라면 값을 50원 내렸습니다. 1,000원짜리가 950원이 됐습니다. 13년 만의 인하였습니다.

지난 편에서 우리는 값을 올린다고 알려지면 오히려 줄이 길어지는 가방을 봤습니다. 이번 편은 그 반대편입니다. 방송에서 부탁 한마디면 값이 내려가는 봉지. 손님이 가격표를 외우고 있는 브랜드 이야기입니다.

50원의 정치

신라면은 1986년에 200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200원이 1,000원이 되기까지 36년이 걸렸습니다. 2022년 9월에 1,000원이 됐고, 이듬해 7월에 950원으로 내려갔다가, 2025년 3월 17일에야 다시 1,000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상률 5.3%. 2년 반 만이었습니다.

그 사이 농심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분기 숫자가 말해줍니다. 2023년 4분기 영업이익률 1.7%. 100원어치를 팔아서 1원 70전이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원가는 오르는데 값은 못 올리니, 남는 게 없는 장사를 한 해 가까이 했습니다.

2025년 한 해로 넓혀 봐도 그림은 비슷합니다. 매출 3조 5,143억 원, 영업이익 1,839억 원. 이익률 5.2%입니다. 회사 스스로 "2023년에 내렸던 값을 원래대로 되돌린 것이 이익 증가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익이 12.8% 늘었는데, 그 상당 부분이 장사를 잘해서가 아니라 50원을 돌려받아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또 한 번 눈치게임이 있었습니다. 농심은 8월 1일부터 컵라면·스낵·음료 43개 브랜드 값을 평균 5.8% 올렸습니다. 그런데 봉지라면은 전부 뺐습니다. 신라면도 당연히 빠졌습니다. 봉지라면이 농심 라면 매출의 63%인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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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팔리는 물건일수록 값을 못 올린다. 이게 이 업종의 역설입니다. 명품 가방은 유명할수록 값을 올리고, 라면은 유명할수록 값을 못 올립니다. 손님이 가격표를 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라면 1,000원. 이 숫자는 농심 것이 아니라 국민 것이 돼버렸습니다.

情 자를 아홉으로 읽어도

초코파이는 1974년에 나왔습니다. 그때 값이 50원이었습니다. 상자에 情이라는 한자가 붙은 건 1989년부터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노래와 함께요. 중국에 갈 때는 仁으로, 베트남에 갈 때는 Tình으로 글자가 바뀝니다. 나라마다 마음을 부르는 글자가 다르다는 걸 상자 하나가 가르쳐줍니다.

이 글자를 두고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한자를 모르는 아이가 상자를 보고 그 글자를 '아홉'이라고 읽었다는 얘기입니다. 뭐라고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그 아이도 그게 초코파이라는 건 알았으니까요. 글자를 못 읽어도 알아보는 것, 그게 브랜드입니다 ^^;

그런데 이 브랜드도 값은 못 올립니다. 2013년에 올린 뒤 9년을 참다가 2022년 9월에 12개들이 한 상자를 4,800원에서 5,400원으로 올렸습니다. 12.5%였습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 오리온이 과자 13종 값을 최대 20% 올릴 때 초코파이만 빼놨습니다. 신라면과 똑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면 오리온은 어디서 남길까요.

2025년 오리온 매출 3조 3,324억 원, 영업이익 5,582억 원. 이익률 16.8%입니다. 농심의 세 배가 넘습니다. 비밀은 매출의 구성에 있습니다. 한국이 1조 1,500억, 중국이 1조 3,200억, 베트남 5,380억, 러시아 3,390억. 매출의 65%가 밖에서 옵니다.

특히 러시아 숫자를 보세요. 2025년 매출이 47% 늘어 처음으로 3,000억을 넘겼고, 올해 상반기에는 1,955억 원으로 또 32% 늘었습니다. 영업이익은 62% 늘어난 296억. 이익률 15%입니다. 같은 기간 한국 부문 영업이익은 5.4% 줄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초코파이를 차와 함께 먹습니다. 체리 맛, 수박 맛처럼 한국에는 없는 초코파이가 그쪽 매대에 있습니다. 전쟁 중에도 오리온은 러시아 공장을 돌렸고, 지금은 트베리 공장에 2,400억 원을 들여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 중입니다. 한국에서 못 올린 값을, 한국 손님이 모르는 나라에서 벌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락, 러시아의 국민 컵라면

초코파이보다 먼저 러시아에 자리 잡은 한국 브랜드가 있습니다. 팔도 도시락입니다.

1986년에 나온 네모난 컵라면입니다. 올해로 마흔 살이 됐습니다. 1991년, 부산항에 드나들던 러시아 선원과 보따리상들이 이 네모난 컵을 사 갔습니다. 뚜껑을 열면 포크가 들어 있고, 기차 안 좁은 탁자에 올려놓아도 안 굴러갑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이보다 편한 끼니가 없었습니다.

1997년에 현지 사무소를 열었는데 첫해에 판매가 일곱 배로 뛰었습니다. 이듬해 러시아가 외환위기를 맞아 외국 회사들이 짐을 쌀 때 팔도는 남았습니다. 그 뒤 현지 법인과 공장 두 곳(랴잔·코야)을 세웠고, 지금 러시아 컵라면 시장의 60% 안팎이 도시락입니다. 러시아 사람 한 명이 1년에 두 개꼴로 먹습니다. 러시아어로 도시락(Доширак)은 컵라면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습니다. 우리가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일이 그쪽에서 벌어진 겁니다. 2021년에는 한국 회사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저명상표'로 등록됐습니다.

숫자는 이렇습니다. 러시아 누적 판매 80억 개. 한국에서 40년간 판 것이 8억 개니까, 본국의 열 배를 남의 나라에서 팔았습니다. 2025년 러시아 매출 6,328억 원. 러시아 사람들은 이 라면에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데, 팔도는 2012년에 아예 마요네즈 소스를 넣은 '도시락 플러스'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손님 입맛에 맞춰 내 물건을 고치는 것, 이것도 브랜드가 하는 일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팔도는 주식시장에 없다는 점입니다. hy(옛 한국야쿠르트) 계열의 비상장 회사입니다. 러시아에서 그렇게 벌어도 개인 투자자가 살 수 있는 주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투자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조를 보는 눈으로만 읽으시면 됩니다.

불닭, 가격표가 없는 나라에서 파는 법

이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2011년, 삼양식품 김정수 당시 사장이 명동의 매운 찜닭집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봤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매운 걸 먹고, 먹고 나서 또 먹는 사람들. 이걸 라면으로 만들어보자. 이듬해 4월 불닭볶음면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안 팔렸습니다. 너무 매워서요. 그런데 2014년 무렵부터 유튜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외국 사람들이 이 라면을 먹으면서 우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파이어 누들 챌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 세계 청소년이 이 봉지를 들고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그 결과가 2025년 장부입니다. 매출 2조 3,518억 원, 영업이익 5,242억 원. 이익률 22.3%. 매출의 82%가 해외입니다. 올해 2분기는 더 셉니다. 매출 7,703억(39% 증가), 영업이익 1,762억(47% 증가), 이익률 22.9%. 해외 매출이 분기 기준 처음으로 6,000억을 넘겼고, 미주 2,036억(54%↑), 중국 1,810억(44%↑), 유럽 806억(61%↑)로 어느 한 곳에 기대지 않습니다. 여섯 분기 연속 이익률 20%를 넘겼고, 5월에 불닭 브랜드 누적 판매가 100억 개를 넘었습니다.

여기서 이 글의 핵심 문장이 나옵니다.

신라면은 손님이 가격표를 외우는 나라에서 팔고, 불닭은 손님이 가격표를 모르는 나라에서 판다.

한국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 값이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뉴욕이나 파리에서 불닭볶음면 값이 얼마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준이 없으니 비교도 없고, 비교가 없으니 비싸도 삽니다. 지난 7월 식품 값 눈치게임에서 삼양식품은 국내 값을 아예 안 올렸습니다. 해외가 82%니까 국내 가격표에 목맬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브랜드력이 가격결정력이고 그 크기가 영업이익률로 나온다는 지난 편의 공식이, 여기서는 한 줄 더 붙습니다. 가격결정력은 브랜드가 강한 곳이 아니라 가격표가 없는 곳에서 생긴다.

숫자로 보는 네 브랜드

구분농심 (신라면)오리온 (초코파이)삼양식품 (불닭)팔도 (도시락)
2025년 매출3조 5,143억3조 3,324억2조 3,518억비상장 (러시아 매출 6,328억)
2025년 영업이익1,839억5,582억5,242억비공개
영업이익률5.2%16.8%22.3%
해외 매출 비중30% (올 상반기 33.9%)65%82%러시아가 주력
주가 (9월 4일)430,000원126,300원1,417,000원
시가총액약 2.6조약 5.0조약 10.7조
PER / PBR15.4배 / 0.89배13.1배 / 1.31배27.4배 / 8.5배

표를 한 줄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삼양식품 매출은 농심의 3분의 2인데, 시가총액은 네 배입니다.

시장이 뭘 보고 값을 매기는지가 여기 있습니다. 매출이 아닙니다. 그 매출이 어디서 나느냐입니다. 국내 가격표에 묶인 매출은 아무리 커도 값을 못 받고, 가격표 없는 곳에서 나오는 매출은 작아도 값을 받습니다.

농심 PBR 0.89배라는 숫자를 잠깐 보세요. 회사가 가진 장부상 재산보다 주식이 싸다는 뜻입니다. 3조 5천억을 파는 회사가 2조 6천억에 거래됩니다. 신라면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신라면이 너무 국민 것이라서입니다.

투자자의 눈

농심이 이걸 모를 리 없습니다. 2030년까지 해외 비중 60%, 매출 7조 3천억, 이익률 10%. 이게 회사가 내놓은 목표입니다. 올해 상반기 숫자를 보면 방향은 맞게 가고 있습니다. 해외 매출이 26.8% 늘어 6,414억, 유럽은 무려 772% 늘었습니다. 영업이익도 31.7% 늘었습니다. 다만 그 이익 증가에는 50원을 돌려받은 효과가 섞여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신라면이 해외에서 불닭만큼 값을 받는 날이 와야 이 회사의 PBR이 1을 넘습니다.

오리온은 중국이 다시 살아나는 게 관건입니다. 올 상반기 중국 매출이 24% 늘었습니다. 러시아는 앞서 본 대로입니다. 한국 부문은 값을 못 올리니 이익이 줄고, 그걸 밖에서 메우는 구조가 당분간 이어질 겁니다.

삼양식품은 정반대 걱정을 해야 합니다. 이익률 22%, PER 27배, PBR 8.5배. 시장은 이미 이 회사의 미래를 상당 부분 값에 넣었습니다. 매출의 대부분이 브랜드 하나에서 나온다는 점, 2027년 중국 자싱 공장이 돌기 시작하면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수 있다는 점, 관세와 환율이 이익률을 흔들 수 있다는 점. 불닭이 잘 팔릴수록 이 걱정도 같이 커집니다. 잘나가는 회사의 주식이 늘 좋은 주식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여러 번 배웠습니다 ㅠㅠ

팔도는 살 수 없으니 부러워만 하면 됩니다.

오늘의 한 줄

브랜드가 강해질수록 가격표는 회사 것이 아니라 손님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 식품 회사의 이익은 손님이 가격표를 모르는 나라에서 납니다.

신라면과 초코파이는 국민 브랜드가 된 대가로 값을 못 올립니다. 도시락과 불닭은 남의 나라에서 국민 브랜드가 됐고, 그 나라 손님은 우리가 얼마에 파는지 모릅니다. 같은 밀가루, 같은 기름, 다른 나라. 이익률 5%와 22%는 거기서 갈립니다.

다음 편은 다시 바다를 건넙니다. 같은 고무와 천으로 만든 운동화인데 왜 어떤 건 세 배 값을 받는지, 그 회사는 신발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는 이유가 뭔지. 나이키 이야기입니다.

※ 본 글은 공개된 실적 자료와 보도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실적 수치는 각사 공시와 보도 기준, 주가·시가총액·PER·PBR은 2026년 9월 4일 종가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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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쳐이사 · 1997년부터 시장에 있습니다. 팍스넷·씽크풀 시절부터 같은 이름으로 썼고, 지금은 전 종목 자동 스캔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그 데이터로 씁니다. 운영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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