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충전금 4,276억, 금고엔 1,374억 — 이자 408억 벌던 돈이 청구서로 돌아온 날 (브랜드 경제학 ⑭)
지갑을 열면 쓰지도 않는 카드가 몇 장 있습니다. 그중 한 장이 스타벅스 카드입니다.
저는 이걸 오래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 커피값을 먼저 내는 습관. 그것도 한 잔 값이 아니라 열 잔 값, 스무 잔 값을요. 다른 가게에서는 안 그럽니다. 김밥집에 가서 "일단 10만 원 넣어 둘게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그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잘 됩니다.
얼마나 잘 되냐면, 4,276억 원어치가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은 그 4,276억 원이 회사 장부에서 어느 칸에 적히는지, 그리고 그 칸이 왜 올해 여름에 회사를 적자로 밀어 넣었는지 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건 커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은행 이야기입니다.
먼저, 그 돈은 자산이 아닙니다
많은 분이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손님이 미리 돈을 냈으니 회사 돈이 늘어난 것 아닌가.*
절반만 맞습니다. 현금은 늘어납니다. 그런데 같은 크기의 빚도 같이 생깁니다.
회계에서 이 돈은 선수금(先受金) 이라고 적힙니다. 먼저 받은 돈이라는 뜻이고, 자리는 부채 칸입니다. 아직 커피를 안 줬으니까요. 손님이 내일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그때 비로소 매출이 됩니다.
그러니까 스타벅스 카드에 5만 원을 넣는 순간, 회사 장부에는 이렇게 적힙니다.
| 차변 (자산) | 대변 (부채) |
|---|---|
| 현금 5만 원 | 선수금 5만 원 |
받은 건 맞는데, 내 것은 아닙니다. 커피로 갚거나 현금으로 물어 줘야 하는 돈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회계 규칙입니다. 재미있어지는 건 다음부터입니다.
이자 한 푼 안 주는 은행
부채인데 이상한 부채입니다. 이자가 없습니다.
은행이 예금을 받으면 이자를 줍니다. 회사가 회사채를 찍으면 이자를 줍니다. 그런데 스타벅스 카드에 넣어 둔 5만 원에는 아무도 이자를 안 줍니다. 손님이 자발적으로, 웃으면서, 때로는 별을 모으려고 더 넣어 달라고 조르기까지 하면서 맡깁니다.
회사는 그 돈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예금과 신탁 같은 현금성 자산으로 굴립니다.
그 결과가 이겁니다.
| 선불충전금(선수금) | 4,276억 원 |
|---|---|
| 2020년 이후 누적 이자이익 | 408억 원 |
손님 돈을 굴려 408억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의 조달 금리는 0%입니다.
이런 구조를 가진 회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보통 은행이라고 부릅니다. 싸게 조달해서 굴리고 그 차이를 먹는 사업이니까요. 다만 이 은행은 조달 금리가 은행보다 낮습니다. 0보다 낮은 금리는 없으니, 사실상 세상에서 제일 싸게 돈을 빌리는 축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래 이상하다고 했던 그 습관 — 커피값을 먼저 내는 것 — 의 정체가 여기서 나옵니다. 손님은 편의를 샀다고 생각하고, 회사는 무이자 예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돌려받기는 어려웠습니다
예금이라면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스타벅스 카드 약관은 잔액의 60% 이상을 써야 나머지를 환불해 줬습니다. 5만 원을 넣었으면 3만 원어치를 마신 뒤에야 남은 2만 원을 돌려받는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은 1만 원 이하 금액형 상품권은 80% 이상 사용 시 반환입니다. 기준 자체가 있습니다. 있는데, 그 기준의 모양이 이렇습니다. *많이 써야 나머지를 돌려준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안 쓰고 잊히는 돈. 카드를 잃어버리거나, 앱을 지우거나, 그냥 잊습니다. 업계에서는 낙전수입이라고 부릅니다. 쌓인 4,276억 중에 그런 돈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는 바깥에서 알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평상시의 그림입니다. 손님은 편하고, 회사는 이자를 벌고, 아무도 크게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 구조에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주 조용해서 잘 안 보이는 전제입니다.
아무도 한꺼번에 찾으러 오지 않는다.
그리고 5월에 일이 생겼습니다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버디위크 행사의 하나로 '탱크 텀블러' 판매 행사를 열었습니다. 광고 문구에는 '책상에 탁!' 이라는 표현이 들어갔습니다. 행사 날짜, 소재, 문구가 5·18 민주화운동 및 관련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이튿날인 5월 19일 행사가 중단됐고 해당 상품 판매도 멈췄습니다.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사과했고, 대표는 해임됐습니다. 이후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름 시즌 행사인 e-프리퀀시도 취소됐습니다.
이 글은 그 사건 자체를 다루지 않습니다. 이 글이 보는 것은 그 다음에 장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전제가 깨졌습니다
불매가 번졌고, 사람들은 카드에 넣어 둔 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6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60% 사용 조건 없이 잔액 전액 환불을 시행했습니다. 첫날부터 "카드 200장을 환불했다", "20만 원 넘게 돌려받았다"는 인증이 올라왔습니다. 2주가 끝난 뒤에는 종전의 60% 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이 글의 핵심 숫자가 나옵니다.
전액 환불을 발표하던 시점, 회사가 들고 있던 현금은 1,374억 원이었습니다.
| 금액 | 비율 | |
|---|---|---|
| 갚아야 할 선수금 | 4,276억 원 | 100% |
| 손에 쥔 현금 | 1,374억 원 | 32% |
3분의 1입니다.
이 그림에 이름이 있습니다
은행을 배울 때 제일 먼저 나오는 개념이 있습니다. 부분지급준비금 제도입니다.
은행은 예금 전액을 금고에 쌓아 두지 않습니다.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대출하거나 굴립니다. 모두가 한날한시에 돈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제도입니다. 그 전제가 깨지면 뱅크런이 됩니다.
스타벅스 카드도 정확히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셋 있습니다.
하나. 예금자보호가 없습니다. 은행 예금은 1인당 1억 원까지 법으로 보호됩니다(2025년 9월 1일 5,000만 원에서 상향). 커피 카드 잔액에는 그런 장치가 없습니다.
둘. 지급준비율 규제가 없습니다. 은행은 예금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남겨 둬야 합니다. 얼마를 남길지 법이 정합니다. 스타벅스는 그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32%였던 겁니다.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셋. 감독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선불업자 규제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두고 5월에 논의가 있었습니다. 4천억 원대 자금이 금융당국의 정기 점검 밖에 있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은행처럼 돈을 받고, 은행처럼 굴렸는데, 은행에 붙는 규제는 없었습니다.
장부로 옮기면 이렇게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5~6월 이야기입니다. 이게 숫자로 확인된 건 8월 13일, 2분기 실적 발표 때였습니다.
SCK컴퍼니(스타벅스코리아)
| 2026년 2분기 | 금액 | 전년 대비 |
|---|---|---|
| 매출 | 7,473억 원 | −6.1% |
| 영업손익 | −184억 원 | 적자 전환 |
| 2026년 2분기 | 금액 | 전년 대비 |
|---|---|---|
| 매출 | 6조 9,150억 원 | −1.8% |
| 영업손익 | −430억 원 | 적자 전환 (전년 +216억) |
여기까지만 보면 "불매로 매출이 좀 빠져서 적자가 났구나"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 줄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한 줄이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이마트 (별도 — 마트만)
| 2026년 2분기 | 금액 | 전년 대비 |
|---|---|---|
| 매출 | 4조 4,428억 원 | +3.5% |
| 영업이익 | 256억 원 | +64% |
마트는 잘했습니다. 매출도 늘고 영업이익은 64% 늘었습니다. 그런데 연결로 묶으니 430억 적자가 됐습니다.
본업이 64% 더 벌었는데 회사 전체가 적자로 뒤집혔습니다. 상반기 누적으로 봐도 영업이익이 1,353억 원으로 25.2% 줄었습니다.
이게 자회사를 거느린 회사의 손익계산서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3분기 전망에도 "스타벅스 부진 장기화"가 따라붙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담보였나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왜 사람들은 커피값을 미리 낼까.
편해서입니다. 별을 모으려고도 하고요. 그런데 그 밑에 깔린 건 결국 하나입니다. 이 회사가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으면 4,276억 원은 그냥 편리한 선불금입니다. 회사는 이자를 벌고 손님은 줄을 덜 섭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믿음이 흔들리면, 같은 4,276억 원이 한꺼번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가 됩니다. 금리는 0%인데 만기는 손님이 정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싼 빚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측이 안 되는 빚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브랜드가 진짜로 담보로 잡고 있던 것은 부동산도 재고도 아니었습니다.
브랜드가 담보였습니다. 그리고 담보는 하루 만에 값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갑을 다시 열어 보시면 같은 구조가 여럿 나옵니다. 교통카드, 배달앱 포인트, 새벽배송 적립금, 기프티콘, 백화점 상품권, 게임 머니.
선불로 받아 두는 회사는 전부 같은 장부를 씁니다. 손님 쪽에서 보면 편의고, 회사 쪽에서 보면 무이자 조달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믿음 위에 얹혀 있습니다.
⑬편 코스트코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회사는 돈 받는 자리를 계산대에서 입구로 옮겨 흔들리는 이익을 흔들리지 않는 이익으로 바꿨다고요. 연회비는 1년에 한 번 정해진 값으로 들어오고, 갱신율 92.3%면 내년 수입이 거의 계산됩니다.
스타벅스도 돈 받는 자리를 옮긴 회사입니다. 커피를 건네는 순간이 아니라 충전하는 순간으로요.
그런데 옮겨 간 자리의 성질이 달랐습니다. 코스트코의 회비는 이미 회사 돈입니다. 갱신을 안 하면 내년에 안 들어올 뿐, 이미 받은 걸 물어 주지는 않습니다. 스타벅스의 충전금은 끝까지 손님 돈입니다. 커피로 바뀌기 전까지는요.
같은 "미리 받기"인데, 하나는 매출이고 하나는 부채입니다. 그 차이가 평상시에는 안 보이다가, 손님이 마음을 바꾼 날 전부 드러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에 스타벅스 앱에서 충전 버튼을 누르실 때, 그 화면이 조금 달라 보이실 겁니다.
그건 결제 화면이 아닙니다. 무이자 예금 가입 화면입니다. 예금자보호는 없고, 이자는 회사가 갖고, 찾으려면 60%를 먼저 써야 하는 예금이요.
물론 그래도 넣으실 수 있습니다. 줄을 덜 서는 값으로 그 정도면 싸다고 판단하실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 넣는 것과 모르고 넣는 것이 다릅니다. 이 시리즈는 늘 거기까지만 합니다.
받아 둔 돈은 브랜드가 멀쩡할 때만 편의입니다. 브랜드가 흔들리면 그건 만기가 한꺼번에 돌아오는 빚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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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측 출처: 선불충전금(선수금) 4,275억 6,311만 원(2025년 말 기준, 전년 3,950억 8,377만 원 대비 8.22% 증가), 2020년 이후 누적 이자이익 약 408억 원, 환불 시행 직전 보유 현금 1,374억 원은 언론 보도 인용입니다(파이낸셜뉴스·서울신문 2026년 5월 24일, 글로벌이코노믹 2026년 5월 28일). 본문에서는 4,276억 원으로 반올림해 표기했습니다. SCK컴퍼니 2026년 2분기 매출 7,473억 원(전년 대비 −6.1%)·영업손실 184억 원, 이마트 연결 2분기 매출 6조 9,150억 원(−1.8%)·영업손실 430억 원(전년 동기 영업이익 216억 원), 이마트 별도 2분기 매출 4조 4,428억 원(+3.5%)·영업이익 256억 원(전년 156억 원 대비 +64%), 상반기 누적 매출 14조 385억 원(−1.5%)·영업이익 1,353억 원(−25.2%)은 2026년 8월 13일 실적 발표 보도 인용입니다.*
*환불 조건(잔액 60% 이상 사용), 2026년 6월 1~14일 한시적 전액 환불 시행과 종료, 공정거래위원회 금액형 상품권 반환 기준(1만 원 이하 80% 이상 사용)은 회사 약관 및 언론 보도에 근거합니다. 보유 현금 1,374억 원은 특정 시점 기준이며, 회사가 즉시 동원 가능한 자금의 총액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 환불로 빠져나간 금액은 공시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5월 18일 행사 관련 서술은 언론 보도로 확인된 경위(행사 중단, 대표 사과 및 해임, 그룹 차원의 사과와 자체 진상조사, 여름 시즌 행사 취소)에 한정했습니다. 이 글은 해당 사안에 대한 평가나 논평을 담고 있지 않으며, 그 이후 회사 재무에 나타난 변화만을 다룹니다.*
*선수금의 회계 처리와 부분지급준비금·예금자보호·지급준비율에 관한 설명은 일반적인 제도 안내입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선불전자지급수단 규제의 적용 범위는 사업자와 상품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므로, 구체적인 적용 여부는 금융당국 안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낙전수입의 규모는 공시되지 않아 본문에서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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