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보조지표 완전정복 ⑯ 슈퍼트렌드 지표 보는 법·설정값·원리 — "늦지만 안 틀린다"는 말이 무너지는 날, 30년 주식쟁이의 강의노트 [보조지표 시리즈]
지난 편 끝에 슈퍼트렌드를 예고하면서 "왜 늦지만 안 틀리는 게 아니라, 늦어서 틀리는 날이 있는지부터 이야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날부터 갑니다.
HTS에서 슈퍼트렌드를 켜면 차트 위에 계단처럼 생긴 선이 하나 붙습니다. 주가 아래에 초록으로 붙어 따라오다가, 어느 날 주가가 그 선을 아래로 뚫으면 선이 주가 위로 훌쩍 올라가서 빨강으로 바뀝니다. 색이 바뀌는 순간이 하도 시원해서 처음 보면 "이거다" 싶습니다. 실제로 요즘 HTS·MTS마다 기본으로 들어가 있고, 유튜브에서 제일 자주 보이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선이 정확히 무엇을 재고 있는지 물어보면 대답이 잘 안 나옵니다. 색이 예쁘게 바뀐다는 것만 알고 씁니다. 오늘은 그 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부터 보겠습니다.
파도 높이만큼 떨어져 따라오는 부표
슈퍼트렌드를 이해하려면 ATR이라는 재료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름은 거창한데 뜻은 단순합니다. "요즘 이 종목은 하루에 보통 얼마나 움직이나"를 잰 숫자입니다. 어제 종가에서 오늘 고가·저가까지의 거리를 며칠치 평균 낸 것이고, 위로 가는지 아래로 가는지는 안 봅니다. 방향은 모르고 크기만 아는 자입니다.
바다로 옮겨 보겠습니다. ATR은 그날의 파도 높이입니다. 잔잔한 날은 30센티, 태풍 오는 날은 3미터. 파도가 어느 쪽으로 치는지는 안 적혀 있고, 얼마나 높은지만 적혀 있습니다.
슈퍼트렌드는 그 파도 높이를 가져다가 안전선(부표)을 띄우는 지표입니다. 배가 가는 쪽 반대편에, 파도 높이의 세 배쯤 떨어진 자리에 부표를 놓습니다. 파도가 잔잔한 날은 부표가 배 바로 옆에 바짝 붙고, 파도가 거친 날은 저만치 물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부표는 배 쪽으로만 따라옵니다. 뒤로는 절대 안 물러납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 부표도 따라 올라오고, 배가 멈칫하면 부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그러다 배가 부표를 넘어가는 날, 슈퍼트렌드는 "아, 방향이 바뀌었구나" 하고 부표를 반대편으로 옮기고 색을 바꿉니다.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예측하는 장치가 하나도 없습니다. 넘었으니까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이지, 바뀔 것 같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지표의 정체는 사실 이렇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하이라이트를 틀어 주면서 아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봐, 여기서 흐름이 넘어갔지" 하고 짚어 주는 친구입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그 친구가 짚어 줄 때쯤이면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
⑩편 파라볼릭과 형제인 이유
⑩편에서 파라볼릭 SAR을 다뤘습니다. 주가 아래위로 점이 콕콕 찍히다가 어느 순간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그 지표입니다. 슈퍼트렌드를 처음 보시는 분도 어딘가 익숙하다면, 그건 착각이 아닙니다. 둘은 같은 집안입니다. 둘 다 "따라오는 손절선"이고, 둘 다 뒤로는 안 물러나고, 둘 다 넘어가면 방향을 뒤집습니다.
다른 건 무엇을 기준으로 따라붙느냐입니다.
- 파라볼릭은 시간을 봅니다. 추세가 오래 갈수록 점이 점점 빨리 따라붙습니다. 가만 놔두면 계속 조여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짧아지는 밧줄입니다.
- 슈퍼트렌드는 파도를 봅니다. 변동성이 커지면 선이 물러서고, 잔잔해지면 바짝 붙습니다. 밧줄이 아니라 고무줄에 매달린 부표입니다.
이 차이가 실전에서 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급등이 나와서 하루 변동폭이 확 커진 날, 파라볼릭은 계속 조여 오지만 슈퍼트렌드는 오히려 뒤로 물러납니다. 파도가 높아졌으니 부표를 멀리 놓는 게 이 지표의 규칙이거든요. 뒤에서 이게 왜 위험한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에 나오는 사용법과 그 함정
책과 유튜브가 가르치는 건 대개 한 줄입니다. 초록으로 바뀌면 사고, 빨강으로 바뀌면 판다. 여기에 "손절선은 선에 두면 된다"가 붙습니다.
깔끔합니다. 너무 깔끔해서 문제입니다.
이 규칙이 잘 통하는 구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쭉 가는 장, 그러니까 추세장입니다. 추세장에서 슈퍼트렌드는 늦게 태워 주고 늦게 내려 주지만, 타고 있는 동안 흔들어 떨구지 않습니다. 중간에 며칠 밀려도 선이 저 아래 있으니 안 팔고 버티게 해 줍니다. "늦지만 안 틀린다"는 칭찬은 이 구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문제는 시장이 그렇게 가는 날이 생각보다 적다는 겁니다.
파도가 잔잔해지면 부표가 배에 바짝 붙습니다. 앞에서 말한 규칙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배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좌우로 흔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조금만 흔들려도 부표를 넘습니다. 색이 바뀝니다. 반대편에 부표를 놓습니다. 또 넘습니다. 또 바꿉니다.
이게 횡보장의 슈퍼트렌드입니다. 초록-빨강-초록-빨강이 하루걸러 나옵니다. 신호마다 성실하게 따라 매매하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은 종목에서 수수료로만 계좌가 얇아집니다. 방향을 못 맞혀서가 아니라, 방향이 없는 걸 계속 방향이라고 알려 줘서 그렇습니다.
"늦지만 안 틀린다"가 무너지는 날이 바로 이 날입니다. 횡보장에서 이 지표는 늦기까지 하면서 자주 틀립니다. 늦는 건 원래 성질이라 참을 수 있는데, 늦으면서 자주 틀리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ㅠㅠ
설정값 — 숫자를 만지면 무엇이 바뀌나
기본값은 대개 ATR 기간 10, 배수 3입니다. 배수가 부표를 몇 파도만큼 떨어뜨려 놓을지를 정합니다.
- 배수를 2로 낮추면 부표가 가까워집니다. 신호가 빨라집니다. 그리고 뒤집히는 횟수도 같이 늘어납니다.
- 배수를 4로 올리면 부표가 멀어집니다. 잔잔한 흔들림에는 안 뒤집힙니다. 그리고 방향이 진짜 바뀐 날도 한참 뒤에 알려 줍니다.
지난 세 편에서 계속 드린 말씀을 또 드리게 됩니다. 설정값을 바꾸면 신호의 개수가 바뀌지, 맞히는 비율이 바뀌지 않습니다. 빠르게 만들면 빠르게 틀리고, 느리게 만들면 느리게 틀립니다. 뒷북 치는 친구한테 "좀 빨리 말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이제 아무 때나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빨라지긴 했습니다 ㅎㅎ
10과 3은 그냥 두셔도 됩니다.
실전 — 이 지표의 두 얼굴
버티게 해 주는 난간으로는 훌륭합니다. 사람이 추세에서 밀려나는 이유는 대개 방향을 틀려서가 아니라 중간에 무서워서입니다. 며칠 밀리면 손이 먼저 나갑니다. 슈퍼트렌드는 그때 "선은 아직 저 아래 있습니다" 하고 눈에 보이게 그려 줍니다. 판단을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이미 한 판단을 안 뒤집게 잡아 줍니다. 이 지표의 진짜 쓸모는 여기 하나입니다.
방아쇠로 쓰면 장세에 목숨을 겁니다. 색이 바뀌는 순간을 매매 신호로 쓰면, 추세장에서는 잘 벌고 횡보장에서는 벌어 둔 걸 도로 게워 냅니다. 그런데 지금이 추세장인지 횡보장인지는 이 지표가 안 알려 줍니다. 그건 다른 참모의 일입니다.
여기서 앞에서 미뤄 둔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급등 뒤에 부표가 물러나는 문제입니다. 며칠 크게 오른 종목은 변동폭이 커집니다. 파도가 높아졌으니 규칙대로 부표가 저 아래로 물러납니다. 주가는 저 위에 있고 선은 한참 아래에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 손절선을 이 선에 통째로 맡겨 두면, 되밀릴 때 번 것을 거의 다 돌려주고 나서야 색이 바뀝니다. 지표는 규칙대로 일한 겁니다. 다만 그 규칙이 "내 수익을 지켜 준다"는 뜻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계좌를 부수는 장면
하나. 색이 바뀌자마자 전량 매매. 횡보장에서 이걸 반복하는 겁니다. 초록에 사고 이틀 뒤 빨강에 팔고, 다시 초록에 사고. 한 달 뒤에 보면 종목은 제자리인데 계좌만 줄어 있습니다. 손실 난 매매가 하나도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수수료와 세금은 방향이 없어도 꼬박꼬박 나가거든요.
둘. "너무 늦다"며 배수를 낮추기. 늦은 게 답답해서 3을 2로, 2를 1.5로 내립니다. 신호는 확실히 빨라집니다. 그리고 뒤집히는 횟수가 두 배, 세 배가 됩니다. 늦어서 손해 봤다고 생각한 사람이, 빨라서 더 크게 손해 보는 자리로 스스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 지표는 늦으라고 만든 지표입니다. 늦은 걸 고치면 지표가 아니라 소음이 됩니다.
셋. 손절선을 이 선에 완전히 위임하기. 위에서 말씀드린 그 장면입니다. 급등 뒤 선이 저 아래로 물러난 걸 보면서 "아직 신호 안 떴으니 괜찮다"고 버팁니다. 신호가 뜰 때쯤이면 수익이 거의 없습니다. 추적 손절선은 내 손절선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내 손절선과 같이 쓰는 것입니다. 얼마를 잃으면 나갈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해야 합니다.
다른 참모들과의 궁합
- ⑩ 파라볼릭 SAR과는 같이 켜지 마십시오. 같은 집안, 같은 부서입니다. 둘을 나란히 띄우면 정보가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 목소리만 두 배가 됩니다.
⑪편에서 말씀드린 가짜 확신이 여기서 생깁니다. 둘 중 성격에 맞는 하나만 고르시면 됩니다. - ⑫ DMI의 ADX가 이 지표의 당번입니다. ADX가 낮으면 지금은 방향이 없는 장이라는 뜻이고, 그때가 바로 슈퍼트렌드가 하루걸러 색을 바꾸는 구간입니다. ADX가 낮은 날은 색을 아예 안 보는 것만으로 위의 첫 번째 장면이 대부분 사라집니다.
- ① 이동평균선은 큰 방향 필터입니다. 긴 이동평균 위에서는 초록만 듣고 빨강은 "그만 탄다"로만 쓰고, 아래에서는 반대로 쓰는 식으로 절반을 걸러냅니다.
- ⑤ 거래량이 최종 결재입니다. 색이 바뀌었는데 거래량이 평소와 같다면, 그건 방향이 바뀐 게 아니라 부표를 살짝 스친 것일 때가 많습니다.
⑪편의 회의 순서를 또 적어 둡니다. 방향, 위치, 진심. 슈퍼트렌드는 방향 부서입니다. 그것도 "이미 바뀐 방향을 확정해 주는" 담당이지, "바뀔 방향을 예상하는" 담당이 아닙니다. 예상은 이 참모의 업무 분장에 없습니다.
강의노트의 마지막 줄
이 지표를 오래 쓰면서 남은 문장은 이겁니다.
"늦는 것은 이 지표의 흠이 아니다. 늦는 줄 알면서 빠르게 고쳐 쓰려는 손이 흠이다."
슈퍼트렌드는 처음부터 뒤따라오라고 만든 선입니다. 파도가 얼마나 높은지 재고, 그만큼 떨어져서 따라오고, 넘어가면 색을 바꾸고. 그 일을 아주 성실하게 합니다. 이 선이 내 계좌를 부술 때는 지표가 고장 났을 때가 아니라, 부표를 보고 파도를 예측하려 들었을 때입니다. 부표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떠 있는 물건입니다.
다음 편은 ⑰ 켈트너 채널입니다. 오늘 나온 ATR로 만든 또 하나의 지표인데, 생긴 게
④편 볼린저밴드와 거의 똑같습니다. 그런데 울타리를 세우는 재료가 다릅니다. 같은 모양의 울타리가 왜 다른 날에 무너지는지, 그리고 둘을 같이 띄우는 게 왜 의외로 중복이 아닌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 본 글은 교육 목적의 자료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